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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국민서포터즈

조선시대의 교육제도는 어땠을까요?

대한민국 교육부 2020. 10. 15. 18:00

현대에는 학교에 다니며 배움을 이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과거의 교육제도, 예를 들어서 조선시대와 같이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과 다른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교육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오늘은 조선시대에 어떻게 교육이 이뤄지고, 인재를 어떻게 육성했을지, 그리고 그렇게 육성된 인재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홍도 '서당'

 

조선 시대 교육의 시작, 서당

우리가 조선시대의 교육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은 서당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당은 지금의 초등학교~중학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하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서당에서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우리는 학교에 입학하면 글씨 바르게 쓰기, 예의범절과 같은 살면서 필요한 것들, 그리고 국어와 수학 등 여러 과목의 기초를 배우는 것이 공통적인 교육과정의 시작점인 것처럼 조선 시대의 서당에서도 이러한 배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의범절과 붓글씨 쓰는 법부터 시작해 천자문, 사자소학, 소학, 명심보감 등 매우 기초적인 유학의 기초를 배웠다고 합니다.

 

지금의 초등학교에서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한 반에서 공부하지만, 서당의 경우엔 7~8세에 입학하여 15~16세에 공부를 마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20세가 넘는 학생도 많았다고 하니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이 함께 공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당은 사설 교육기관으로서 일정한 조건이나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세워지고 또 없어지는 일이 잦았다고 하는데요, 양반 신분의 유학자가 자기 집에서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었고, 또 마을에서 선생님을 직접 모셔와 서당을 차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서당 공부를 마친 학도들은 향교나 서원, 혹은 과거를 거쳐 성균관으로 옮겨가 나라의 인재가 되기 위해 열심히 학문에 정진했습니다.

 

 

(본 저작물은 한국정책방송원'에서 '1959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대관령서당의 훈장과 학동들의 인사 모습(작성자:한국정책방송원)'을 이용하였으며,해당 저작물은 '한국정책방송원,공유마당'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더욱 발전된 교육! 향교와 4부 학당

오늘날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은 향교와 4부 학당입니다. 향교는 지방에, 4부 학당은 현재는 서울인 한양에 4곳이 설치되어 있었는데요, 두 곳 모두 국립 교육기관입니다. 향교와 4부 학당에서는 주로 소학과 사서오경을 공부하였는데, 학업이 우수한 학생들은 성균관 입학 자격이나 진사시, 생원시 시험에 직접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고 합니다.

 

향교와 4부 학당의 차이점을 간단히 살펴보면, 우선 각각 지방과 한양에 위치했다는 점 외에도 4부 학당의 경우 학생 정원이 학당마다 100여 명이었고, 향교의 입학 정원은 고을의 위상과 크기에 따라 차이가 났다고 합니다. 또한 향교에는 성균관과 마찬가지로 공자와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문묘가 있었는데요, 반면 4부 학당에는 문묘가 없었다고 합니다.

 

 

 

사립 중등 교육기관, 서원을 아시나요?

조선시대에는 향교와 4부 학당 외에도 중등 교육기관이 있었는데요, 바로 ‘서원’입니다. 서원은 향교와 마찬가지로 옛 유학자들을 모시고 제사를 치르기도 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다만 향교는 국립 교육기관이고, 서원은 사림에 의해 세워진 사립 학교라는 점이 다릅니다.

 

"본 저작물은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2018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한국저작권위원회_2018_신미식_국내_대한민국_4492(작성자:한국저작권위원회)'을 이용하였으며,해당 저작물은 '한국저작권위원회,공유마당'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후기, 서원이 결국에는 파벌을 일으켜 당파 싸움을 조장하고 민생에 폐단을 일으킨다는 지적이 있었고 결국 흥선대원군 때에 많은 서원이 문을 닫고 말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서원이 현재까지도 남아있으며 영주 소수서원,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 등을 포함한 9개의 서원이 201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는 등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 성균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균관’입니다. 미래의 관리들을 교육시키는 조선의 국립 대학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성균관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공자를 비롯한 유교의 성현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수능과 비슷한 1차 과거 시험인 소과에 합격해 생원, 진사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성균관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요, 약 200여 명의 성균관 유생들이 받던 혜택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수업료 무료는 기본, 기숙사 입주와 필기구 등의 생필품도 제공 받았다고 하는데요, 또한 관리가 되는 시험인 대과 응시 자격까지 주어졌다고 합니다. 단, 출석을 잘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아야 하며, 시험 성적 또한 우수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유생들 간의 경쟁도 굉장히 치열했다고 해요.

 

 

교육의 마무리, 과거 시험

조선시대 교육과정의 목표는 결국 과거에 합격해 관직에 나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앞서 얘기하는 소과를 거쳐, 실제 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대과를 치러야 했습니다.

대과는 크게 세 가지의 시험으로 응시가 이뤄졌습니다. 초시, 복시, 전시가 그것인데요. 초시는 성균관 학생 중 우수한 학생이 응시하는 50명 규모의 관시, 한양에 사는 양반이 응시하던 한성시, 향촌에서 살던 양반 150명이 응시하는 향시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초시에서 240명을 가려낸 뒤, 두 번째 시험인 복시를 보았는데요. 그 단계에서는 유교경전, 문예창작, 논술 등을 시험을 보았고 33명의 합격자를 확정했다고 합니다.


초시와 복시를 다 합격하였다면, 시험 순위를 결정하는 시험인 전시를 치르게 됩니다. 전시는 왕이 직접 시험 문제를 출제했습니다. 시험문제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문제가 출제되었다고 합니다. 전시의 결과로 순위를 나눴는데요, 1~3위까지는 갑과, 4~10위까지는 을과, 나머지는 병과라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조선 시대의 교육제도를 알아보았는데요. 과거에도, 현재도, 교육은 체계적이게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위 기사는 2020 교육부 국민서포터즈의 의견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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