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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종가박물관, 충현 박물관

대한민국 교육부 2013. 8. 28. 11:00


저희 외할아버지께서는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글을 쓰셨고, 여러 기록 남기기를 즐겨 하십니다. 여든여덟이라는 고령의 연세에도 지금도 글을 쓰시고, 가족 카페에 소식 남기기를 즐기시는데 얼마 전 외삼촌께서 올리신 글을 잠깐 소개하려고 합니다. 외삼촌께서는 할아버지께서 그동안 모아오신 학창시절의 기록들(사진, 졸업장, 성적표, 상장 등)을 스캔하여 책으로 엮는 작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의 70년 전 어린 시절 모습과 한자투성이라 읽기도 어려운 당시의 성적표는 무척이나 신기했습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이 담임선생님으로 계시던 시절 이야기, 일본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격동의 세월을 보낸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였으니까요. 수십 년 지난 자료를 잘 보관하고 계시는 할아버지도 대단하시지만, 아버지의 기록을 잊지 않고 보존하려는 외삼촌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종가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지요? 이렇게 조상의 흔적을 잊지 않고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대표적인 존재가 종가가 아닐까 싶은데요, 국내 유일의 종가박물관이라는 광명 충현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오리 이원익 종가 - 광명 충현 박물관>

충현박물관오리 이원익 종가에서 가문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선비 문화를 계승,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박물관입니다. 오리 이원익 선생에 대해서는 들어보셨나요? 오리 이원익(1547 명종 2 ~ 1634 인조12) 선생은 삼정승을 두루 지내고 영의정을 다섯 차례나 지낸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정묘호란 등을 거치며 전쟁복구와 민생 안정에 힘썼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동법을 경기도 지역에 실시하도록 한 사람도 바로 이원익 선생인데요, 낙향 후에는 두 칸짜리 오두막에 살며 청빈한 삶을 살아 청백리의 표상으로 불리기도 한 분입니다.

 

그럼 다음으로 종가란 무엇인가 잠깐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종가조선 중기 이후 약 400년간 유지되어 온 가족제도로서 시조 대종가와 중시조 소종가로 나뉜다. 대종가시조로부터 장자로 이어진 가문을 말하며, 소종가대종가에서 중시조를 기점으로 파생된 종가를 말한다. 소종가는 국가에서 사후 시호를 받아 불천위로 정한 중시조를 모시는 가문이다. 오리 이원익 종가는 조선조 3대 왕 태종의 12째 아들 익령군을 시조로 하여 익령군의 4대손인 오리 이원익이 사후 문충의 시호를 받음으로 탄생한 중시조 종가이다. 종가의 임무는 불천위의 묘관리 및 봉제사를 통하여 가문을 지키는 일이었다. 제도적 종가는 조선조 중기에 탄생하여 1910년 국권침탈 이후 사라졌으며, 현재는 관습적 종가로서 존재할 뿐이다. 

출처 : 충현박물관

 

어려운 말이 많은데요, 장손이라고 그냥 종갓집이 되는 것이 아니랍니다! 국가에서 불천위로 정해졌어야 가능한 일인데, 불천위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으신 분에 대해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神位)를 말한다고 합니다.

<교원연수 중 충현 박물관에 대해 강의 중이신 박물관장님>

이 박물관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원익 종가에서 직접 만든 박물관이라는데 있습니다. 지금의 박물관장님은 이원익 종가 13대 종부 함금자님으로, 운 좋게도 직접 종갓집 후손의 삶에 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종갓집으로 시집와 힘들게 살림을 배우고 많은 제사를 지내고, 조상들의 유품을 보존하려고 노력하신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진진했습니다. 보물이나 값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그냥 집에 있던 물건들인데 알고 보니 임금께서 직접 하사하신 물건이 있기도 했고, 한국전쟁이 나고 난리 통에 그 소중한 문화재가 망가지고 약탈당한 것이 안타까워 공부하고 되찾으려고 노력하신 이야기는 감동적이었습니다.

관장님의 강의를 들은 후 오후부터 학예사님과 함께 실내 전시관을 먼저 둘러보고, 야외를 둘러보는 순으로 관람하였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한 번 둘러보고 말았을 유물들이 아까 만난 관장님의 시아버지의 아버지의 물건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흔하디흔한 유물이 아닌 하나하나 사연 있는 소중한 선조의 유품으로 다가옵니다.

<이원익 종가에서 직접 제사지낼 때 쓰던 300년 된 제기>

실내 전시관 관람 후에는 야외로 나갔는데요, 종가 고택과 옛 서원 터, 종가 후손들의 무덤, 종갓집에서 아주 중요한 공간인 제사를 지내는 오리영우가 있었습니다. 특히 조임금이 이원익에게 직접 하사한 관감당이란 건물은 청백리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지금도 많은 공무원이 방문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종가 고택 관람 중>

<관감당 - 조선시대 임금이 하사한 사택 중 유일하게 보존된 곳 - 관감이란 ‘보고 느끼다’라는 뜻으로, 인조임금이 “내가 집을 하사하는 이유는 신민들이 그대의 청백리의 삶의 자세를 보고 느끼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취한 것이다.>

<이원익 유서-1630년 84세 되던 해에 직접 쓴 유서로 그의 청백리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국내 유일의 종가박물관충현박물관은 관람하면서 나라의 큰 공을 세우고 덕망 높은 학자였던 분들의 유물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이를 대대로 소중히 보관해온 후손들의 정성이 더욱 놀라웠습니다. 그 가치를 알아서라기보다는 조상님들의 물건을 버릴 수 없어서,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서 보존해온 것들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 당시 모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 것이지요.

 

저희 할아버지의 기록들도 후손의 후손에게까지 보관한다면 훌륭한 유물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의 전통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노력꼭 종갓집처럼 특별한 누구에게만 한정되는 책임은 아닐 것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소중한 전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책임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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