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공식 블로그

70년동안 차별화된 인성교육을 하는 모교 본문

교육부 국민서포터즈

70년동안 차별화된 인성교육을 하는 모교

대한민국 교육부 2010. 8. 31. 07:00
요즘 교육계에 '인성교육'이 화두가 되고있기에 문득 생각이 났다.
내가 다녔던 모교에서 받았던 독특하고 훌륭한 인성교육이 아직도 계속 되고 있을까? 우선 학교 홈페이지를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계속하고 있었다.

전화로 확인을 하고 여고 졸업후 41년만에 모교를 찾아 가게 됐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굴레방다리'라고도 불렀다. 나는 서울 중앙여고를 1970년에 졸업을 했다.
 
내가 입학을 할 당시에는 전기 입시에 떨어진 학생들이 갔던 후기 고등학교였다
한 번 패배를 한 학생들만 모인 학교여서 학생들은 그리 의욕적이지 않았다.
그즈음 설립자인 독립유공자 황신덕 이사장의 아들인 윤형빈 교장선생님이 부임을 하셨다. 경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유학을 다녀 왔다는 그분의 교육관은 확실히 달랐던 것 같다.
 

* 설립자 황신덕 이사장님 동상이 교문 입구에 있었다. 이분의 훌륭한 점은 기독교인이지만 학교는 일반 사립학교를 만드신 것이다.


* 옛날 교복을 입은 여고생 동상의 모델은 나와 동기였던 염항숙이었다. 졸업후 수도여사대 미대(현 세종대학교)를 진학을 한 것으로 기억이 난다. 매주 토요일이면 운동장에서 전교생에게 포크댄스를 가르쳤던 교장선생님이 기억이 났다. 요즘은 포크댄스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교복과 두발을 한번 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 우연히 지나가던 후배 3명에게 포즈를 부탁했다. 교복 상의를 입은 학생과 생활복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두발은 자유롭게 기르고 있었다. 아주 합리적인 모습이었다.


* 학기말고사도 끝난 (7월9일 방문) 금요일이라서 고1학생들이 학교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운동장 바닥에 앉아서 삽겹살을 구워먹고 있는 후배들의 모습이다. 이 야영도 하고 싶은 반만 한다고 했다.
 


** 자 이제 부터 나의 모교인 중앙여고의 차별화된 인성교육을 소개하려고 한다.
 


   1. 한 학기에 3번, 일년에 6번 하는 수양회
 
 
매달 마지막 토요일 2,3교시에 한다. 개심견성하기 위해서 조용히 묵념을 하며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시작을 했었다.

 開心見誠[개심견성] :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만 참과 진리를 볼 수 있다.
 
1)사회 저명 인사의 강연을 들었다.
 
2009년도 수양회 강사는 다음과 같다. 
 
1. 김인권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사목) : 나는 과연 믿을만 한 사람인가?
2. 김인자 (용문 상담심리 대학원총장) : 행복을 만드는 긍정 심리
3. 정희성(시인, 민족 문학 작가 회의 이사장) : 나의 시, 나의 삶
4. 정소정(건국대학교 부속 병원 의사) :푸른 삶
5. 이선희(한문화 인성교육 한국 뇌호흡 연구소 강사) : 성공하는 학습방법
6. 최광렬 (백석대 교수) : 비전으로 가슴 뛰는 인생을 살아라.
 
 

2) 재학생 중에서 재능있는 학생의 관혁악 연주를 들었다.

 
1970년에 졸업한 내가 아직 좋은 추억으로 기억을 하고 있으니 후배들도 그럴 것이다.
 
 
 
 
   2. 일학년의 가야금 교육
 

내 기억으로는 1967년도 우리가 처음으로 배운 것 같다. 서울대학교 국악과 대학원생이었던 총각 선생님은 우리들 앞에서 늘 볼이 밝그레 해져서 가르쳐 주었다. 처음에는 손가락이 물집이 생겼으나 곧 굳은 살이 생겼다. 2010년 현재도 1학년 후배들이 배우고 있었다.
 

 

 
   3. 단오잔치: 전교생 체육대회
 
 
내가 재학중이던 1967년도 부터 1969년까지는 고1, 고2 전교생이 일년간 음악시간에 합창 연습을 했다. 12월 크리스마스 즈음에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의 전신인 시민회관 무대에 전교생이 무대에 올라가서 "할렐루야" 를 합창했던 추억이 있다. 해마다 그때에 음악축제를 해서 가족, 친구들을 초청했었다.

시민회관이 불에 탄 후 1973년부터 축제의 방법을 바꾸었다. 음력 5월5일 단오 때 "단오 축제'를 했다. 올해로 39회를 실시했다.
 

1) 우리 민족고유의 민솔놀이 : 그네뛰기, 널뛰기, 줄다리기를 체험한다.
 
 
2) 민속놀이를 현대적 체육과정으로 발전시켰다.
 
3) 스승과 제자가 함께하며 전통문화를 계승시킨다.
 


    4. 생활관 실습 3박4일
 
 
개교 때부터 약 70년 간 실시해 왔으나 생활관 자리가 재개발 계획지로 선정되서 올해 부터 잠은 집에서 잔다고 했다.
 
1) 교육목표 : 서로돕고 배려하는 공동체 경험으로 전체 속의 나의 정체성을 찾게 한다.
기초 생활예절, 전통예절, 다도, 조리 실습, 양성 평등 역할,을 배운다. 



2) 실습학년 : 1학년 전체 학생
 
3) 교육효과 :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과 협동심을 실습하여 조화롭게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인성을 가르친다. 실습 마지막날에 부모님을 초청해서 한복을 입고 큰 절을 한다.


내가 고1이었던 1967년도에는 아주 무섭고 엄격한 가정선생님이 사감이었다. 아침과 저녁식사를 우리가 직접해서 먹고 학교에 다녔다. 어묵볶음을 해 놓으면 "너의 집에서는 이렇게 하느냐?" 고만 물었는데도 모두 주눅이 들고 자신이 없어서 움추러 들었던 기억이 난다.
방의 가구를 바꾸어 보기, 책을 머리에 얹고 이층에서 아래층으로 걸어 내려오기, 한복 입는 방법, 한복입고 절하기 등이 기억에 난다.
 

5. 무감독고사 실시 [1977년부터 실시]: 34년째 유지해 오고 있다.
 
인터뷰에 응해준 박상학 교감선생님은 아마도 전국에서 유일한 '무감독고사' 학교일 것이라고 했다. 몇개 학교가 시도 해 봤으나 대부분 실패 했다고 한다.
학생들 스스로 학교와 자기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자존심을 유지 하고 있다.
 
 
6. 학교 도서관 주민에게 개방
 
나는 고1이었던 1967년도에 고입 실패로 원하지도 않았던 중앙여고에 진학을 했다. 내가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은 반성하지 않고 학교만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곳이 있었다.
 
4층에 있던 도서관은 '개괄식 도서관'으로 학생들 마음대로 서가에서 책을 찾아 읽을 수가 있었다.고1 때 도서관에서 읽었던 주옥같은 국내 문학, 세계문학은 나에게  독서가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을 준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이광수의 '우정', '무정',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 이상의 '날개' 와 난해한 시집 '오감도' , 황순원 전집, 김동리 전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폭풍의 언덕'을 읽느라고 밤을 꼬박 새웠다.
언젠가도 쓴 적이 있지만 책에 미쳤었고, 몸도 아파서 마지막 시험을 못 봐서 낙제할 지경도 돼 봤다.

고1 담임선생님은 4.19 데모에 압장 서서 있다가 총에 맞아서 한쪽 폐를 절제한 분이었다.
너무 순하고 어진 노총각 남선생님의 정성어린 배려로 나는 고2에 진학을 했다. 내가 고2에 진급을 하고 박우동 선생님은 보성고등학교로 전근을 갔다
 
그 도서관을 요즈음은 지역 주민과 함께 사용한다고 했다. 주민들에게 책도 대여해준다고 한다. 독서 모임도 여러 팀있다고 들었다.
 

7. 사교육없는 모범학교 선정
 
2010년 모교인 서울중앙여고는 교과부에서 '사교육 없는 모범학교'로 선정되었다.
 
내가 학교 다닐때는 서대문에서 북아현동 뒷길로 걸어서 학교까지 갔다.
그당시 그 등교길의 이층집들은 부촌에 속했다. 강남이 없을 때였고 1960년대 였기 때문일 것이다.

41년만에 찾아 간 모교는 우리가 다닐때 보다 입학률이 저조 하다고 했다.
우리 때는 강남, 강북 구분이 없었다. 지금은 돈이 좀 있는 부유한 집들은 강남으로 이사를 가고 주로 서민들의 자녀가 다닌다고 했다.
 
강남의 학교가 성적 위주의 교육에 몰두하고 있을 때 나의 모교는 묵묵히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실천하고 있었다. 내가 다닐 때보다 더 좋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교감 선생님과의 인터뷰가 끝날 때쯤 나는 재학할 때는 느끼지 못한 모교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안타까운 것은 고3때 담임이셨던 전재룡 선생님이 10년 전 지병으로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 오래 지방에 살았고 삶의 풍상이 심해서 모교를 아예 잊고 살았던 사실을 깨달았다. 중앙 현관에 역대 교장선생님 사진속에서 국어 선생님이셨던 장관준 선생님의 모습도 반가웠다.
 
** 41년전 제가 다닌 서울 중앙여고는 후기 고등학교였습니다. 일차에서 입시에 실패한 동기들은 풀 죽은 모습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41년의 세월을 지내고 보니 그 첫 번째 좌절이 저를 겸손하고 낮아지게 했습니다. 그때는 저렇게 좋은 교육을 받으면서도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두발 자유를 공약으로 내건 학생 회장 후보가 당선되자 바로 실시하게 해준 윤형빈 교장선생님께 고마움을 느낍니다. 

어찌보면 문제아였던 저를 매일 부르셔서 가능성을 깨닫게 해주시고 믿어준 고1담임 박우동 선생님이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인성교육에 앞서 가는 나의 모교 서울 중앙 여고를 저는 41년만에야 온전히 사랑하게 됐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박상학 교감선생님 고맙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