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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지도의 독도 ■ 삼국접양지도 ▲삼국접양지도(1785)(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1785년 하야시 시헤이의 『삼국통람도설』에 첨부된 5장의 부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도에서 국가를 구분하기 위해 조선은 황색, 일본은 녹색 등으로 채색을 달리했는데요. 울릉도와 독도는 한반도와 같은 황색으로 채색하였습니다. 또 그 옆에 “조선의 소유다 [朝鮮ノ持也] ”라고 적어 이들 두 섬이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 조선동해안도 ▲조선동해안도(1876)(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러시아 해군 팔라다호의 장교들은 1854년 한반도 동해안을 세밀하게 측량했으며, 그 성과로 해군부 수로국은 1857년에 「조선동해안도」 를 제작했습니다. 이 지도를 바탕으로 일본의 해군 수로부는 1876년 「조선동해안도」 를 번역..
우리 고지도의 독도 ■ 팔도총도 ▲팔도총도(1531)(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팔도총도」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의 첫머리에 수록된 조선전도로서 현존하는 우리나라 고지도 중 독도가 그려진 가장 오래된 지도입니다. 「팔도총도」 에는 국가의 기밀을 지키기 위해 누구나 알 수 있는 주요 산과 하천, 섬, 도(道)와 바다의 명칭 등 간단한 정보만을 수록하였습니다. 독도는 우산도(于山島)로 표기하고, 동해 지명은 바다가 아닌 동해신(東海神)을 제사하는 강원도 양양에 ‘동해(東海)’라고 표기하였습니다. 이 지도는 본래 1481년에 만들어진 것인데 동해 상에 울릉도와 우산도 두 개의 섬이 그려져 있습니다. 비록 위치는 정확하지 않지만 ‘팔도총도’에 두 개의 섬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이는 조선 정부가..
일본의 독도 관련 문헌 ■ 은주시청합기 ▲은주시청합기(1667)(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일본의 지방관리가 1667년 오키 섬을 둘러본 뒤 자신이 보고 들은 오키 섬의 역사, 지리 등을 상세히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언급이 있습니다. 일본의 북쪽 한계를 오키 섬으로 적고 있는데, 이는 당시 일본인들이 독도를 자신의 영토가 아닌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도쿠가와 막부에 대한 돗토리 번 답변서 ▲도쿠가와 막부에 대한 돗토리 번 답변서(1695)(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1693년 울릉도에서 불법 어업을 하던 일본 어민들이 울릉도에서 마주친 안용복 일행을 일본으로 데리고 옵니다. 이를 계기로 한일 양국 간에 울릉도 영유문제가 대두되었는데 이를 ‘울릉도 쟁계’ 또..
대한제국칙령 제 41호, 평화선 지도 등독도관련 국내외 문헌자료는? ■ 대한제국 칙령 제 41호 ▲대한제국 칙령 제 41호(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대한제국 정부는 1900년(고종 37) 10월 25일자로 전문 6개조의 「울릉도(鬱陵島)를 울도(鬱島)로 개칭(改稱)하고 도감(島監)을 군수(郡守)로 개정(改正)한 건」 을 결정하였다. 이 내용은 1900년 10월 27일자 대한제국 관보를 통해 공포되었다. 이 칙령 제2조에는 “군청의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鬱陵全島)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죽도는 울릉도 본섬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는 섬으로서울릉도 주민들은 이 섬을 댓섬(대나무섬)이라고도 부르는데, 죽도(竹島)는 댓섬의 뜻을 취하여 한자로 표기한..
삼국사기부터 울릉도 검찰일기까지, 독도관련 국내외 문헌자료는? ■ 삼국사기 ▲삼국사기(1145)(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삼국사기』권4의 지증왕 13년조에는 하슬라주(何瑟羅州, 지금의 강릉지역)의 군주인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于山國)을 복속하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동국문헌비고』에서는 여지지(輿地志)에 “울릉도와 우산도(독도) 모두 우산국 땅”이라고 하여 우산국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됨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한 6세기부터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고려사 ▲고려사(1451)(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우산국은 고려가 세워진 이후에도 고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우산국은 930년(태조 13) 이래 고려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고,..
역사왜곡 일삼는 일본이 독일을 본받아야 하는 이유 ■ 독일의 반성일본은 1910년 조선의 주권을 강제로 빼앗고 35년간 지배하면서 우리 민족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또한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일본은 조선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를 침략하였습니다. 아시아에서 일본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하려 했다면 유럽에서는 독일이 그러했습니다. 히틀러를 중심으로 하는 나치는 유럽 지배를 목표로 유럽의 많은 나라를 침략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건물이 파괴되는 등 유럽은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나치의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오라두르 쉬르 글란 마을(출처: 에듀넷) 히틀러가 죽고 독일은 세계대전에서 패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독일이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독일이 저지른 ..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국내외 문헌자료로 보다! ■ 독도는? [지리적으로]예로부터 울릉도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울릉도와 독도,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볼 수 있는 주요 관측 지점(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울릉도 사동 새각단에서 바라본 독도(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독도에서 바라본 울릉도(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역사적으로]독도가 대한민국의 고유영토라는 사실은 『삼국사기』, 『팔도총도』등 다수의 옛 문헌과 지도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만기요람』에는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우산국의 영토였다"고 기록 되어 있고, 과거 일본 정부도 독도가 우리 한국의..
‘반크’의 제4기 디지털 독도 외교대사 발대식에 참여하다 혹시 ‘반크’라는 단체에 대해 들어본적 있으신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크라는 이름은 자주 들어보았지만 정확히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크를 독도지킴이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요, 사실 반크는 독도지킴이 활동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바로 알리고 자랑스럽게 만들기 위한 모든 분야에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16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제4기 디지털 독도 외교대사’ 발대식을 통해 반크가 하고 있는 노력들을 비록 일부분이지만 생생하게 전달해보고자 합니다. ‘제4기 디지털 독도 외교대사’는 전국에서 지원한 인원 중 심사를 통해 뽑은 100명이 참여했습니다. 3인 이하 팀으로 지원할 수 있었는데 반크동아리를 운영하고..